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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소개

지눌 돈오점수 요약

풍풍이 2024. 2. 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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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의 돈오점수는 중국 불교사상인 선종의 영향을 받아 꽃을 피운 수행 방법론으로 우리나라 불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연구되는 주제임에 따라 핵심 정보를 요약했습니다.

 

지눌 돈오점수 요약
지눌 돈오점수 요약

 

1. 돈점론의 역사적 뿌리와 전개

 

중국에 불교가 들어와 사상계의 전면에 등장한 4세기의 중국 불교인들은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증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주된 흐름은, 마치 산에 올라갈 때에 한걸음 한걸음 걸어 마침내 정상에 올라서듯이, 깨달음 또한 점진적인 수행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도생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여 돈오를 역설하였다.

 

 

승예의 물음: "새로운 이론을 창안한 법사[도생]에 따르면, 궁극적 진리는 매우 미묘하고 신비해서 단계가 없다고 한다. 새로운 이론에 따르면, 깨달음은 현상적인 존재의 밖에 있으며, 깨달음을 얻는 것은 단계적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령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여 수행에 힘을 쏟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에 밝음 [진리에 대한 인식]이 날마다 진척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날마다 점점 밝음이 진척되는 것을 어찌 단계적인 깨달음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도생의 대답: "밝음은 결코 점진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가르침으로부터 일어난다. 왜 그러한가?" 가르침이 있은 뒤에 믿는 마음이 생기고, 날마다 진척됨이 있다. 그런데 밝음이란 점진적인 사태일 수 없으므로, 밝음 속에 부분적으로만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물론, 도를 향해 나아감에 훌륭한 마음이 생긴다고는 할 수 있다. 결박이 점점 사라지면, 번뇌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이 사라짐을 마치 무(無)와 같다고 여길 법도 하다. 훌륭한 마음가짐을 마치 악의 반대인 것처럼 여길 법도 한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성취는 아직 (궁극의 경지가) 아니다. 결박을 완전히 벗어난 마음과 같다고 할 수 없다. 돈오에 이르러야 온갖 결박이 완전히 사라진다."

 

2. 돈오점수 수행법

 

돈오 점수의 수행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전개된 것은 7세기의 선종 승려인 신수와 혜능에 의해서이다. 북종을 대표하는 신수는 모든 중생들이 불성을 갖추고 있어서 본래 붓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번뇌의 실재성을 인정하여 '부지런히 수행하여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점수를 역설하였다. 마치 본래 깨끗한 거울에 먼지가 끼어 거울이 그 밝은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 중생의 현실이기 때문에, 거울에 먼지가 끼지 않도록 부지런히 털고 닦아 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반면에 혜능은, 불성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고, 현상적인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번뇌의 실재성을 부정하였다. 번뇌는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인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 혜능의 주장이다. 그것은 마치 눈에 병이 난 사람이 허공에 피어 있는 꽃을 보거나, 둘로 겹쳐진 달을 보는 것과 같다.

 

존재론적으로 볼 때, 허공의 꽃이나 겹쳐진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

 

 

번뇌도 또한 그러하다. 따라서, 번뇌의 실재성을 인정하여 번죄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수행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번뇌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번뇌는 저절로 사라진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번뇌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불성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전체적인 깨달음인 돈오이지 점수가 아니다. 이처럼 선종의 남종과 북종은 그 수행 방법에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었는데, 결국 돈오를 주장하는 남종이 중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3. 지눌의 돈오 점수론

 

남종의 하택종에 속하는 규봉종밀은 남종의 돈오와 북종의 점수를 결합하여 돈오 점수의 수행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규봉종밀의 생각을 이어 돈오 점수의 수행론을 완성한 사람은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이다. 돈오 점수의 수행론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불교의 주된 수행법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돈오 점수의 수행론은 범뇌 망상의 본질, 깨달음의 본질, 깨달은 다음의 수행이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먼저 번뇌 망상의 본질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지눌이전에 혜능은 이미 번뇌 망상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잘못된 생각으로 인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불성만이 실재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지눌 또한 번뇌 망상의 실재성을 부정한다. 그렇지만 실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윤회 속에 형성되어 온 잘못된 생각의 관성에 비추어 볼 때, 번뇌 망상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인정하였다. 번뇌 망상이 본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 이중성이 돈오 점수의 수행론을 가능케 한 요인이다. 번뇌 망상이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깨달음 또한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먼저 돈오에 대하여 알아보자.

 

지눌이 말하는 돈오는 번뇌 망상이 실재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불성만이 존재하며, 그 밖의 존재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말미암는다. 이 점에서 모든 중생은 붓다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재하지도 않는 윤회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들에게 가장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자신의 본성에 대한 인식이다. 이를 통하여 중생은 자신 속에 깃든 불성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곧 붓다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돈오이다.

 

돈오는 해탈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깨달음이지만 궁극의 깨달음은 아니다. 왜냐하면, 번뇌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번뇌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수행이 필요하다. 이것이 점수이다. 

 

이렇듯 지눌이 말하는 점수는 번뇌의 비실재성에 대한 깨달음이 전제된 수행이라는 점에서 북종의 신수가 말하는 점수와 다르다. 돈오가 자신이 붓다라는 사실에 대한 지적인 이해라면, 점수는 그 지적인 이해를 온 인격을 ㅗ실현하는 길이다. 이러한 점수론은 한순간의 지적 깨달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여 오만하고 방일한 행위를 일삼는 당시의 선승들에 대한 준엄한 경책의 의미가 들어 있다. 머리만 붓다가 되었다고 붓다인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붓다가 되어야만 붓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점수의 결과는 증오로 나타난다. 돈오가 시작이 되는 깨달음이라면, 증오는 마지막 깨달음이다. 이제 번뇌 망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한다.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불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며, 그 자신 온 인격으로 붓다가 된다. 이제 더 이상의 수행은 필요하지 않다. 번뇌 망상의 작용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하는 일 모두가 선한 행위가 되며, 다시는 악에 빠지지 않는다. 이것은 완전한 깨달음이다.

 

지눌이 증오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간화선이다.

 

간화선은 의문이 나는 말을 하나 붙잡고 거기에 모든 마음을 집중하여 이를 해결하는 수행법으로서, 송나라 때에 남종선의 임제종을 이은 대혜종고에 의하여 개발되었다. 지눌은 이를 받아들여 증오에 이르는 궁극의 수행법으로 확립하였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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