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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지식의 근원
근대 경험론 철학자들은 경험이 지식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지식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정신작용을 통한 관념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데카르트와 같은 합리론자들과 견해를 같이 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관념이 그러한 토대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했다. 존 로크와 같은 경험론 철학자들은 우선 경험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성 그 자체의 능력으로부터 유래하는 이른바 본유 관념이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데카르트가 예로 든 신의 관념을 한 예로 든다. 사람들 중에는 신의 관념을 지니지 않은 사람도 많을 뿐만 아니라,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각자가 생각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 경험주의 철학자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들은 본유관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은 원래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 또한 이 같은 백지상태의 정신은 경험에 의해 관념이라는 내용물이 채워지지 않는 한 영원히 그 상태로 남게 된다.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관념을 통해 형성되는데, 경험하기 전에는 우리 마음속에 어떤 관념도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경험론은 경험이 지식의 근원이며, 경험하기 전에는 어떠한 지식도 성립될 수 없다고 본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경험주의 철학의 결론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 점에서는 경험론 철학자들의 주장이 합리론자들에 비해서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경험론 철학자들은 아무런 경험 없이 오직 이성적인 직관과 추리능력으로 물리학, 생물학 등과 같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합리론자들을 공격한다. 잠시 합리론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합리론은 과학적 지식의 특징이 확실성에 있는 것으로 보고 그 확실성의 원천을 이성에서 찾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입장은 수학이나 논리학 같은 학문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경험주의자들은 이 같은 합리론자들의 주장을 이성의 능력을 너무나도 과대평가한 독단적 생각이라고 본다.
귀납추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험론
경험론자들은 과학적인 지식에 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귀납추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연역 추리가 비록 확실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해도 전제에 담겨 있는 그 이상의 내용이 결론에 포함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의 외부세계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한 추리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학문으로서의 과학은 궁극적으로 경험된 것으로부터 귀납에 의해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본다면, 경험론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과학적 지식은 경험에서 형성된 관념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시작하여, 귀납적인 추리에 의한 정당화의 과정을 밟아 얻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경험론자들의 이러한 견해는 과학적 탐구가 어떻게 해서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하는가 하는 것을 잘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귀납추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경험론자들은 합리론자들이 강조한 과학적인 지식의 확실성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경험론의 한계
경험론의 한계를 살펴보자. 경험론에서 과학적인 지식은 관념을 지각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지만 문제는 관념들이 반드시 외부의 대상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흰색인 사물이 붉은빛에서는 붉게 보일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 사물이 붉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이다. 이 같은 오류는 우리가 귀납추리를 수행할 때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이 점이 바로 경험론이 지니는 결정적 한계이다. 과학적인 지식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정당화되는지에 대한 경험론자와 합리론자 간의 설명은 각각 경험과 이성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강조한 경향이 있다. 합리론자들의 설명은 과학적 지식의 확실성에 집착한 나머지 경험을 무시함으로써 과학을 독단의 산물로 만들었다. 반면에 경험론자들은 과학을 유용하지만 불확실성이 항상 존재하는 불완전한 학문으로 격하시켰다. 이상과 같이 경험론과 합리론에 대한 소개와 함께 각각의 입장이 지닌 한계를 살펴보았다. 어느 한쪽을 정답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양쪽의 입장을 두루 살피며 지식의 토대를 생각해보는 것은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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